박사 이야기

학회에서 네트워킹하기는 참 힘들다.

헤일리씨 2020. 1. 15. 07:47

학회가 다가왔다는 핑계로 인해, 일주일간이나 블로그에 들리지 못했다. 차마 블로그를 방문하여 글을 쓸 여유를 만들어내기가 힘들었다. 마음의 여유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기에, 나는 만들었던 포스터를 고치는 데에 집중했다. 읽었던 포스터를 읽고 또 읽으면서, 포스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하는 질문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학회야 말로 나를 보여주는 쇼케이스이기 때문에, 나는 이 쇼케이스를 훌륭하게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내게 말해주었다. 

 

 

 

학회 포스터 발표 후기는 다른 포스트에서 쓰고, 오늘은 학회에서 네트워킹하는 것이 내성적이 성격인 내게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보니, 외향적인 척을 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항상 가면을 쓰고 사는 듯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면을 쓴 내가 진짜인지, 아니면 이 가면 속에 감춰진 내 모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미국에 정착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가면 쓴 내 모습이 필요하지 않았다. 누구도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고,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대감 또한 다들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미국에서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내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 내가 어떤 대학생활을 보냈고, 나에게 주어졌던 사회적 정체성에 대해서 다들 알 길이 없었다. 나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없는 사회에서 나는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많은 모임에서 다른 이들에게 먼저 질문하는것이 불편하고, 또 타인에 대해서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떠한 질문이냐에 따라서 듣는 이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 정말 일반적인 것이 아닌 이상 나는 내가 먼저 질문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가벼운 언행으로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침묵이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학회에서 매일밤 있는 네트워킹은 심히 어려운 자리이다. 딱 3일만 외향적인 얼굴의 가면을 써보자고 마음먹지만 쉽지는 않았다. 모르는 이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보며, 그 사이사이  나에 대한 소개를 겸손히 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나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 

 

 

'영어가 잘 안나오면 어쩌지?'

 

 

'저 사람이 반응을 잘 안 해주면 어쩌지?'

 

 

'내가 저사람의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수 천가지의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이런 미로와 같은 생각들 사이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갈 기회를 계속 놓쳐 버린다. 

 

 

'미국에서 직장 잡으려면 네트워킹이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나는 여기까지 와서 기회도 못 잡고 뭐 하는 거지.'

계속적으로 사람들을 놓치는 상황 속에서 나에 대한 실망감까지 점점 더해져왔다.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어도 완벽하지 못한데, 내향적이기까지 하다니,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엇보다 학회 네트워킹 자리에서는 유명한 학자분들을 만날 수는 있지만, 그들은 또 그들의 비즈니스로 인해 우리 같은 학생 나부랭이는 만나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그와 이야기 한번 나눠보기 위한 주니어 패컬티가 어슬렁 거리기 때문에, 그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비집고 가는 것은 어려웠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나를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상태로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저런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그냥 나와 비슷한 박사과정생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만족했다. 생각보다 박사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과 많은 것을 희생하는 대가가 박사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모두가 한 번쯤은 도전해보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녹록지 않은 이 생활이 우리네 인생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줄지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나눴다. 

 

 

 

학회 가기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학회에서 기회를 잡겠다고 전의를 다졌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지금,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성격의 문제인지, 영어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서 정말 나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