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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그 겨울, 우리가 있었던 파리는

헤일리씨 2019. 12. 30. 10:33

처음 여행 이야기의 시작은 얼마 전 남편과 함께 했던 파리 여행 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나와 남편은 일주일간 파리에서 휴가를 보냈다. 휴가라기 보다는 상처가 많은 우리 동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무작정 떠났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우리의 몸과 머리를 붙잡는 많은 상처들이 있다. 써야 할 논문들, 해야 할 과제들, 쌓아놓은 설거지들, 빨래 바구니에 쌓여있는 우리들의 빨래들... 우리가 원했던 것은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었다.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 딱 일주일만이라도 멍하니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 

그 시간을 우리는 그려왔다. 그래서 얇은 지갑이기는 하지만 돈을 모아 비행기티켓을 샀고, 호텔 포인트를 모아 숙박을 해결한 호텔을 예약했다. 여행을 떠나기 3일 전까지도 남편은 연구조교일로 바빴고, 나는 학생들 과제를 채점하는 데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파리로 떠나기 48시간 전까지도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와서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하였고,

파리 여행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도, 합의도 없었다. 한가롭게 여행 계획을 세우며, 우리가 단꿈을 꿀 시기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든 가기 전까지 내 눈 앞에 놓여있는 모든 일과들을 문제없이 해결해야 했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또 얼마나 많이 쌓여있는지를 자각하게 되었다. 그 많은 일들로부터 일주일간 도망치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 긍정적인 결과를 줄까? 우리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동의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은 '휴식'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겨우 우리는 모든 일을 잘 봉합해놓고, 조그마한 기내용 캐리어 하나에 우리 두 사람의 짐을 켜켜이 구겨 넣었다. 

짐을 쌀 때까지도 나는 이 여행을 가는 선택이 정말 옳은 선택이었나, 그냥 집에서 알람 없이 자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일밤 우리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지나다녔던 오페라 극장앞 작은 광장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내게는 생생히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