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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그겨울, 파리] 예상치 못하게 만난 에펠탑이 주는 감동

헤일리씨 2019. 12. 31. 01:39

도착 첫날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모자란 잠을 자는 데에 소비하였다. 비행기에서 잠깐씩 눈은 붙였다고는 하나, 6시간의 시차에서 오는 피로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중거리 비행이라 할지라도, 비행기가 동반하는 멀미 감과 좁은 공간이 주는 불편감으로 인한 피로는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는 호텔 체크인이 될 때까지 라운지에서 각자의 코트를 담요 삼아 선잠을 잤다. 

 

그렇게 10시부터 오후2시까지 총 4시간을 비몽사몽 보낸 뒤에서야 우리는 호텔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호텔방 창문을 통해 생 라자르 역을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굳이 좋은 곳,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이 방에서 바라보는 생 라자르 역만으로 충분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착 첫날, 나는 호기롭게 갈 곳들을 정리했지만 우리는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우는 데에 급급했고, 결국 그렇게 파리에서의 첫날은 흘러갔다. 

 

방에서 매일 마주한 생 라자르역

 

남편과 나는 여행스타일이 매우 다른 편이다. 나는 패키지 여행사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을 곳까지 정해놓는 스타일이라면, 우리 남편은 전날 저녁 혹은 그다음 날 늦은 아침을 먹으며 그날 계획을 짜는 편이다. 그런 남편을 따라 처음 온 유럽여행이 나는 낯설게 느껴졌다. 볼 게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허술하게 계획을 짜면 조금밖에 못 본다며 남편에게 핀잔을 주었다. 우리는 첫날 잠에 들 때까지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단지 나는 그랑팔레를 보러 가고 싶다고만 이야기했다. 과거 박람회를 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유리천장으로 된 건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별다른 계획 없이 그랑팔레를 보러 가자고만 이야기를 하고 잠이 들었다. 

 

 

과거 내가 유럽 여행을 다녔을 때는 주로 아침 6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서 조식을 챙겨먹고, 준비하고 거리를 나서면 주로 7시 반에서 8시 사이. 나는 그 새벽부터 관광을 시작하였다. 종종 브런치를 먹거나, 박물관이 문을 열기 전 도착해 줄을 서있곤 하였다. 하지만 둘째 날 파리에서 내가 눈을 떴을 때가 오전 10시 반이었다. 이미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지났고, 관광을 다니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라 생각하여 우울감이 밀려왔다. 왠지 모르게 하루 여행을 이미 실패부터 시작한 것 같았고, 하루의 절반을 잠으로 날려버렸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게, 쉬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이야기해줬다. 우리가 언제 10시 반까지 자봤으며, 알람을 맞추지 않고 암막 커튼을 치고 꿀잠을 청해보았냐며, 한 학기 열심히 달려온 우리를 위해서 계획의 긴장을 놓아주자고 하였다. 사실 여행이라는 것이 모두가 꼭 봐야 한 다는 것을 다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여행에 대한 의미로 하루하루를 계획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까지도 나는 여행을 마치 공부하고, 연구하듯이 다녔다. 열심히 배워야 하고, 열심히 느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하루하루를 여행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하였으니, 새로운 공간에서 하나라도 더 배워오리라라는 다짐으로 열심히 걸어 다녔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 '쉼' 그 자체 일 수 있다는 사실을 꽤 오랫동안 간과해왔던 것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일어나 호텔을 나왔다. 공복이기는 하였으나,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호텔부터 그랑팔레까지 걸어가기로 하였다. 파리의 교통파업 때문에, 편리한 대중교통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으니, 튼튼한 두 다리로 파리를 느껴보자고 서로 이야기하였다. 구글 맵을 통해 보니, 우리 호텔에서 그랑팔레까지는 약 15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파리의 좁은 보행자 도로를 걸으며, 미국에서는 이렇게도 걸을 시간이 없었는데, 도심 속에서 걷는 것만으로 여행의 의미는 충분하다며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랑팔레로 가는 길에는 무장경찰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시위 때문인건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구글 맵을 통해 주변 장소를 자세히 보니 대통령 궁과 여러 행정부서 건물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파리는 지난 몇 년간 테러로 인해 상당히 고통받았으니, 이런 무장경찰 수십 명이 주요한 국가 건물을 지키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수십 명의 무장경찰을 뒤로하고, 3-4분 걷다 보니 멀리서 유리천장인 건물이 보였다. 그랑 팔레였다. 

 

멀리서도 유리천장이 잘 보였다. 

아쉽게도 그랑팔레는 아이스링크로 사용되는 중이었기에, 들어가는 것이 좀 힘들었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우리는 세느강변 쪽을 걸어보자고 하였고, 점심에는 파리에서 유명한 감자탕을 먹어보자고 하였다. 감자탕이라니, 미국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감자탕을 먹을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구글맵에 감자탕집인 아카사카를 찍고 강변을 따라 걸어가기로 하였다. 세느 강변 쪽으로 나오자마자 남편은 탄성을 질렀다. 에펠탑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눈앞에 보였다. 우리는 오늘 에펠탑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정말 아주 우연히 에펠탑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남편은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고 만난 에펠탑이 자신의 기대와 상상보다도 멋지다며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10년 만에 만난 에펠탑, 10년 동안 나는 참 많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에펠탑은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변하지 않은 에펠탑과 10년동안 많이 변한 내가 함께 있던 파리

우리는 감자탕집까지는 걸어가는 내내 조금씩 가까워지는 에펠탑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걸어가는 시간 내내 우리가 드디어 파리에 와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전날은 공항에서 도착하여, 호텔방에서 잠만 잤기 때문에, 이곳이 파리인지 미국 동네에 있는 체인 호텔인지 알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까워지는 에펠탑을 보다가, 우연히 가보고 싶던 비르하켐 다리를 만나게 되었다. 지리에 무지했던 탓에 기대 없이 만난 장소가 그날은 가득했다. 파리에 있는 다리와는 조금 다른 비르하켐 다리를 건너보고 싶었는데, 마침 감자탕 집까지 가기 위해서는 비르하켐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그런지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도보로 비르하켐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비르하켐 다리를 건너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스냅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인스타에서 #파리 여행을 쳐보고, 팔로우하고 있었기에, 이 곳이 스냅사진 장소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으로만 보았을 당시는 왜 이곳이 스냅사진 장소로 유명할까 알지 못했는데, 직접 건너며 눈으로 담다 보니, 눈으로 담기에는 아름답고 기묘한 장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강 잠수교와 비슷한 듯 다른 이 공간이 주는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사람들을 이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호텔부터 총 1시간 반가량이 걸려서 (중간 중간 에펠탑 사진도 찍고 비르하켐 다리도 찍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하긴 하였지만) 감자탕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공복으로 걸어온 뒤 맞이한 따뜻한 감자탕은 우리 둘 다 입을 모아 올해 먹은 감자탕 중 최고라고  칭하였다. 조미료 맛이 거의 나지 않고, 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만든 것과 같은 맛은 정갈한 집 맛의 느낌을 주었다. 

 

감자탕은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든든히 배를 채운 후 우리는 다시 에펠탑을 향해 걸어갔다. 비르하켐 다리에서 바라본 에펠탑은 유달리 멋있어 보였다. 다른 어느 곳에서 보는 에펠탑보다 비르하켐 다리 위에서 본 에펠탑이 가장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르하켐 위에서 바라 본 에펠탑은 고요해보여 좋았다. 

둘째 날, 우리는 많은 것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에펠탑을 바라보고 감자탕을 먹고, 계속 걷기만 하였다. 하지만 그날 하루 종일 예고 없이 찾아온 에펠탑은 내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