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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파리] 걱정은 항상 불필요한 존재이다. 본문

여행 이야기

[그 겨울,파리] 걱정은 항상 불필요한 존재이다.

헤일리씨 2019. 12. 30. 11:32

우리는 파리까지 직항이 없는 작은 동네에 살고 있다.

사실 작다고 이야기 하기에는 그렇게 작지는 않은 규모의 도시에 살고 있다. 

하지만 유럽까지 가는 직항이 한편도 없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항상 큰 허브공항까지 가는 수고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것을 수고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의 통제 불가능한 상황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주요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라 함은 우리 동네에서 큰 허브공항까지 가는 작은 비행기가 예정보다 늦게 출발하거나, 취소되는 것을 일컫는다. 미국 내 국내선은 여러 대의 비행기를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대의 비행기로 최대 3번의 왕복 운행을 하기 때문에, 앞선 시간의 비행기가 우리 동네 공항에서 늦게 출발하였다면, 우리 비행기가 늦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득이한 환승을 해야 할 경우, 나는 최소 3-4시간의 버퍼 시간을 두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저렴한 티켓으로, 공식 홈페이지가 아닌 여행사를 통해 구매한 티켓이었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정한 1시간 반이라는 환승시간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1시간 반이라는 환승시간이 너무나도 걱정이 되어서, 여행사에 전화도 하고 이메일도 보내서 앞선 비행기로 바꿔서 좀 더 긴 환승시간을 확보하고 싶다고 몇차례 이야기하였으나, 그들은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바꿔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였다. 인당 300불씩만 내면 비행기를 바꿔주겠다고 하였으나, 우리에게는 추가 비용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큰 재정적 부담이었기에, 이번에만 운에 맡겨 환승을 해보자고 다짐하였다. 

 

 

 

하지만 운에만 맡기기에는 1시간 반이라는 환승시간은 내게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이번에 내려야하는 큰 허브공항의 경우 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터미널 간 이동이 얼마나 용이한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는 구글링을 통해 해당 공항의 약도, 터미널 간의 이동시간들을 조사하였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내린 국내선 터미널에서 국제선까지 10분이면 족히 이동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10분이라는 것도 게이트부터 터미널 이동을 위한 트레인을 타는 정류장의 거리를 감안한 것이 아녔기에, 그리 신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 일주일전부터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 전부 하루에 총 4회 비행이 있는 비행기의 평균적 딜레이 시간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그 딜레이는 언제 가장 많이 일어나며, 어느 시간대, 어느 요일에 많이 일어나는지 매일 추적하였다. 내가 타야 하는 시간의 비행기는 자주 딜레이 되었고, 어느 날은 4시 반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 딜레이가 되어서 7시에 도착하기도, 혹은 예정된 출발 시간에 이륙하였지만 착륙에 문제가 있어서 40분가량 지연되어 도착하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사례들을 수집할 수록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이렇게 딜레이가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클레임을 걸고, 어떻게 해야 여행 계획을 망치지 않을 수 있을 지에 조사하였다. 열심히 구글링을 하고, 다른 이들이 써놓은 글들을 정독하였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혹여 활주로에서 많은 시간을 사용하여 늦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하지만 참으로 우습게도, 내가 탄 비행기는 예정보다 20분 일찍 도착하였다. 우리는 짐을 받고 아주 천천히 우리가 타야할 파리행 비행기 게이트 앞까지 걸어갔는데, 그때 내 손목의 애플 워치를 보니 보딩까지 40분이란 시간이 남아있었다. 허무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1주일, 아니 비행기 티켓을 끊은 뒤로 간간히 걱정한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걱정을 사는 데에 온 힘을 쏟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그 시간이 후회되기도 했다. 

 

 

허무하게도 우리는 예상보다도 훨씬 일찍 도착했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탄 파리행 비행기에서 나는 또 남은 걱정에 내 몸을 맡기게 되었다. 바로 파리 파업에 대한 것이었다.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파업과 시위 때문에, 대중교통은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이 물론이며, 택시를 잡는다 한들 택시비가 어마무시하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유랑이라는 오래된 네이버 카페에도 파리 파업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이들의 생생한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목격한 나였기에, 택시를 과연 잘 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허무하게도, 나는 참 편하게, 택시를 잡았다. 도착한 터미널에서 택시 표시를 따라간 뒤, 나는 공항직원에게 신용카드가 가능한 택시를 불러달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는 바로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한 택시로 나를 안내하였다. 그리고 나는 50유로라는 고정된 가격으로 내가 묵는 호텔까지 편히 갈 수 있었다.

 

 

 

 

걱정은 내가 현재를 즐길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과 같은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남편과 함께 첫 유럽 여행에 설렘을 느낄 기회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걱정이란 보이지 않는 검은 존재와 싸우느라 놓친 나의 소소한 설렘과 행복. 아쉽지만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내게 오거든 나는 그 검고 보이지 않는 걱정이란 존재를 깔끔히 무시했는데에 더 많은 노력을 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