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리의 삶쓰기

나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보고 싶다. 본문

삶 이야기(부제: 아내로 그리고 엄마로)

나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보고 싶다.

헤일리씨 2020. 2. 10. 01:15

모든 대학원 생활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은 주말.

 

 

나는 책상 앞에 놓여있던 몇편의 논문들을 버렸다. 색색의 형광펜 줄들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이 논문을 읽었는지와, 박사논문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미련없이 버려버렸다. 그리고 데이터분석을 위해 구매한 랩탑도 다음주 반납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이상 내게 데이터분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리디북스에 들어가서 읽고 싶은 책 한권을 구매하였다. 그리고 아마존에 들어가, 그 책의 원문 책도 하나 주문하였다 ( 몇시간 뒤면 도착할 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 거린다). 30년동안 해보고싶은 것 하나 맘놓고 제대로 못해본 내게 스스로가 미안해졌다. 그저 착한 딸, 사랑받는 딸이 되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외면하고 살아온 삶의 순간들이 준 상처를 내가 천천히 치유해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작년 나는 꽤 구독자가 몇백명 있었던 브런치 작가였다. 몇십만 뷰가 나오는 글도 꽤 있었고, 글을 올리면 몇 만뷰는 심심치않게 나왔다.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내가 나 자신과 어떻게 화해 하려하는지, 그리고 남편과 함께하는 신혼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어떻게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부모와 그들의 플라잉 몽키인 내 동생은 내 브런치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내 브런치 글들을 캡쳐 해서 내게 보내며 부모 팔아먹고, 가족 나쁜 사람만들고 혼자 선량한척 살아가면 좋냐며, 나를 비꼬았다. 내 동생은 내게 욕이 담긴 문자를 보냈다. 더이상 나는 그 브런치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익명성이 훼손된 그 공간에서 나는 나 자신, 날 것의 모습으로 글을 쓸 수 없었다. 내가 끊어낸 나의 가족들은 나의 브런치를 염탐하며, 내 일상을 스토킹하려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비슷한 이유로 나는 링크드인을 열심히 관리하다가 그만두었다. 지속적으로 나의 아버지와 동생이 내 프로필을 클릭한 것이 내게 알람으로 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게 박사는 제대로 다니는지 남편과 이혼은 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어 나를 스토킹했다. 내가 어떠한 아픔이 있었고, 무엇때문에 힘든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다른 친구들한테 내 자랑을 하고, 내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내가 연락을 끊어버렸으니, 할 얘기가 없어진 사실을 비통해 할 뿐이다. 

 

 

 

아예 연락을 끊어버리기 전, 아주 종종 연락을 할 때에 나의 어머니는 내게 연락와서 요새 무엇을 하고 지내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일들을 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왜 궁금 하시냐고 물어보았다.

 

"아 오늘 엄마 대학교 동창들 만나는데, 내가 뭐 너에 대해서 아는게 없으니까 얘기해 줄 게 없잖니, 그래서 물어본거지."

 

역시나, 우리 엄마도 우리 아빠도 모두 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는 궁금하지 않아했다. 논문은 몇편을 퍼블리쉬 했는지, 장학금은 얼마나 받았는지, 그리고 학회는 몇번을 가고, 어느 도시로 갔는지, 남들에게 보여줄 트로피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10대때부터 느꼈지만, 20년간 계속되는 그들의 행태에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절연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절연을 한지 1년여가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나는 그들이 내 블로그나 브런치를 찾아낼까봐 아직도 두렵다. 글쓰기는 내 내면의 치유의 과정인데, 이 과정마저 침범받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떨어야한다. 나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불쌍히 여겨진다. 하지만 다시 글쓰기를 해보려한다. 내게는 쓰지 않는 고통이 더 심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싶다.

 

혼자 울고, 수많은 상황 속에서 홀로 그 상처를 감내하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어린아이가 아닌, 당당히 내면의 힘을 믿고 나아가는 내가 되기 위해서, 나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