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리의 삶쓰기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면서. 본문

삶 이야기(부제: 아내로 그리고 엄마로)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면서.

헤일리씨 2020. 2. 13. 03:13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게되었다. 이번에는 못 찾겠지라는 생각으로.

브런치를 시작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조그만한 시작이지만, 작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남편에게 나는 수없이 이야기했다.

 

 

"내 이름으로 된 책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어."

 

 

사실 박사를 시작한 것도, 논문을 퍼블리쉬하면 내이름으로 된 저작물이 나온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했다. 내이름으로 된 책을 만들기엔 용기도 재능도 없는 것 같으니, 논문으로 대체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논문이란 저작물은 내가 생각한 글쓰기와 다른 글쓰기를 요구했다. 내 감정이 들어가기보단 사실에 기반한 문장만 쓸 수 있었으며, 이 문장을 뒷받침한 레퍼런스를 찾는데에 수많은 시간을 쏟았다. 논문이란 글쓰기를 통해서는 나의 투명한 감정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숨겨야만 하는 글 쓰기였다. 그런 논문적 글쓰기가 지속될 수록 나는 나에 대한 글쓰기를 배출하고 싶은 욕구가 더 샘솟았다.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수많은 생각들을 연결해서 활자로 변환해야만 될 것 같았다. 

 

 

 

매년 몰스킨에, 그런 생각들을 적어내려가긴 했었다. 하지만 바쁘다는 변명아래에, 나는 글쓰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보다 죄스러운 시간으로 여겼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글쓰기와 멀어졌고, 작가의 꿈또한 어린시절 잠시 꾸었던 잡히지 않는 꿈이라 치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후배들과 몇몇 선배들이 작가로 데뷔하고, 좋은 책들을 출간하여 많은 이들에게 읽혀 나아가는 것을 보며 나는 왜 작가라는 꿈을 허황되었다고 치부해버렸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박사를 받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며, 그 때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난과 역경을 이긴 인물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고난과 역경에 굴복한 이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어도 참고, 박사라는 것을 꼭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가되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타이틀이라고 나는 믿어왔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원하는 꿈은 먼 훗날 성공한 뒤에 이룰 것이라며, 모든 것을 미뤄왔다 ( 미뤄 온 것인지, 피해온 것이지는 알 수 없다.). 성공이란 정의가 모호하긴 하지만, 지금 되짚어보면 부모님께 자랑할만 딸, 대학동기들이 부러워할 삶이 내 마음 속 성공이란 그림이었다. 그래서 작가란 이름은 내게 먼 훗날에 존재 할 미래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조승연 작가의 짧막한 마이크 임팩트 강의를 보았다. 조작가는 20대 시절 자신은 뉴욕대를 졸업한 뒤 다른 경영대 선배들처럼 월가에 취직하여 부를 축척하는 금융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쌍둥이 빌딩서 일하던 선배들은 그에게 10년만 여기서 돈을 벌고나면, 캘리포니아에서 서핑을 하겠다고 하였고, 또 다른 선배는 5년만 버틴 뒤에 모은 돈으로 자신이 구상한 사업을 시작 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조작가는 그렇게 미래만을 꿈꾸던 선배들이 2001년 9월 1일, 쌍둥이 건물에서 그 꿈을 멈출 수 밖에 없었던 날을 목격하며, 자신은 '지금'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이야기했다. 더이상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미뤄두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의 짧은 경험담에서 미래만 꿈꾸다 희생하는 '지금'의 가치를 강렬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지금',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그들이 준 '작가'라는 이름으로 내 글을 업로드했다. 어쩌면 작가라는 꿈은, 내게 그리 멀리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단지 내가 그 꿈을 내 눈에 담지 않으려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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