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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가 뭐 있을까? 본문

삶 이야기(부제: 아내로 그리고 엄마로)

인생의 의미가 뭐 있을까?

헤일리씨 2020. 2. 25. 02:11

쓰고 있던 몰스킨을 창고에 넣어두고 새 몰스킨을 꺼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항상 몰스킨에 오늘 해야 할 일을 적는다. 우선순위를 중심으로 가장 중요한 일을 1번 할 일로 적고, 그 이외에 굳이 오늘 안에 끝내도 되지 않을 일들은 9번이나 10번에 적어둔다. 할 일도 카테고리가 있다. 연구할 일/ 이메일 보낼 일/ 집안일할 일/ 운동할 일 이렇게 4가지로 나뉘는데, 각 카테고리 별로 해야 할 일들을 최대한 자세히 적어두었다. 그리고 내가 성취할 때마다 체크를 했다. 그렇게 작은 것들의 성취로부터 내 존재를 확인했던 것 같고, 그렇게 작은 성취들을 이루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큰 목표에 다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은 항상 내게 말했다. 큰사람이 되라고. 큰 사람이 되어서 너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면 그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내 동생에게는 노벨상을 꼭 타라고 말하곤, 네가 하는 분야는 노벨상이 없어서 어쩌냐라고 넘기셨다. 아무래도 농담 같지가 않았던 연유는 자주 이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생이 해외 파견 근무가 끝나고 들어왔을 때도, 부모님은 미래의 노벨상 ** 귀국 축하라는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동생을 맞이하러 가셨다. 지금 생각 나는 거지만, 내가 방학 때 잠깐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나를 마중 나오신 적이 없었다. 혼자 무거운 가방을 끌고 집으로 가는 리무진을 타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출국 때도 부모님은 바쁘시단 이유로 혼자 항상 공항에 갔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도대체 큰사람이 어떤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은 가치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대학시절 스티브 잡스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에게 부모님은 그 전공을 해서 박사 받고 한국에서 교수하다가 국회의원을 하면 딱 좋겠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아니면 총장 하여도 좋겠다며 내게 어떻게 하면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지 그 방향을 정해주셨다.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부모님이 원하시던 미국 유학도 올 수 있었다. 부모님은 미국에서 대학교 교수하다가 너희 모교에서 불러주면 그때 한국으로 컴백해야 한다며, 이런저런 코치를 해주셨다. 나는 인생의 의미가 누가 보기에도 번듯한 직장과 부러워할만한 직책에 있다고 느꼈다. 

 

 

 

공부를 하면할 수록, 연구를 하면할수록, 나는 내 분수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럴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그릇으로 자라고 싶은 사람도 아니었다. 상처 받기 쉽고, 마음이 약하고, 소심한 이런 내 성격은 그런 큰사람으로 자랄 수 없는 기질이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의미를 그런 가질 수 없는 곳에 두었기에, 내가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내 인생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쓸모없고,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매번 괴롭고, 우울하였다. 

 

 

 

마음의 병이 깊어져서 힘들 때 이런저런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에 있는지 알려주는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한 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꽂혔다. 

 

 

"인생의 의미가 그렇게 큰 곳에 있다면, 모든 동물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사는 건데, 그럼 그들은 다 의미 없는 인생이고, 가치가 없는 거냐? 그냥 사니까 사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 아들을 보았다. 시간 될 때 그루밍하고, 밥 먹고 싶은 때 밥 먹고, 놀고 싶을 때 노는 아들의 인생. 그 인생이 가치가 없는 걸까?

 

 

항상 평온해 보이는 우리 아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중 한 명인 침착맨도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차피 인생, 태어나니까 한 번 사는 건데, 그 인생 우리가 행복하고 즐거운 거 찾으면서, 하는 데에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 인생 행복하고 즐거운 거 찾는 그 인생, 그 인생 자체에 가치를 두며 살자. 숨 쉬고, 일어나서 밥 먹고, 아침에 거실로 비추는 햇빛을 맞고, 아들 밥 챙겨주고, 책 읽고, 글 쓰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그 행동 모두가 내 인생의 가치를 정의하는 요소라고. 이제야 깨달았다. 보이는 내 사회적 위치가 아닌, 내가 지금 느끼고 살아가는 이 시간과 이 공간이 내 인생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늦지 않게 깨달았기에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