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리의 삶쓰기

드디어, 새로운 나라로 이주합니다. 본문

삶 이야기(부제: 아내로 그리고 엄마로)

드디어, 새로운 나라로 이주합니다.

헤일리씨 2020. 3. 4. 02:47

꽤 오랜 시간 동안 티스토리에 글을 쓰지 못했어요.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막막한 상황 속에서 제 자신을 다잡으면서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익명 아닌 익명의 힘을 빌려 글을 쓰다가도, 저는 가끔씩 제 가족들이 이 곳을 찾아내서 저를 헤집어 놓지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얼마 전까지도 카카오톡도 안 했어요. 제 커리어 관리를 위해 열심히 관리하는 링크드인에 제 아버지와 동생이 시시때때로 염탐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들을 차단해버렸어요 (저와 제 남편에게는 연락 한번 안 하며 제 남편과 제 프로필을 들락날락 한 기록이 남아있더라고요.).  예전 브런치 폭파(?) 사태와 같이 솔직한 내 공간을 침해받고 스토킹 당할까 봐 매번 전전긍긍했어요. 지금도 혹시나 나를 찾아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글을 써 내려갑니다. 

 

 

 

부모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 결정한 미국행, 그리고 그 곳에서 남편을 만나고 정착하게 되었네요. 그렇게 부모로부터 멀어지려 했지만, 제가 연락을 끊자 부모님은 시부모님 그리고 시동생, 더 나아가 제 박사 동료들까지 귀찮게 하면서 제가 거취를 묻고 다녔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쩔 수 없이 연락할 수밖에 만드려고 한 것 같았어요. 미국에 살면서 저희 집 주소를 알고 있기 때문에, 혹여 우리 집 주소로 나를 찾아와서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전화번호를 아니 어떻게 하든 전화해서 내게 화내고 소리 지르지 않을까 매일매일 마음 졸이며 살았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제발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곳으로 가자고 했어요. 절대 찾아낼 수 없게. 

 

 

 

그리고 드디어, 남편이 캐나다에서 오퍼를 받아서 캐나다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학생비자로 살아가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항상 비자문제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정적이었기에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살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한 달 벌어서 한 달 살며, 행여 예상치 못한 곳에 돈이 나갈 일이 있을까 걱정하며 한 달 한 달을 버틴 4년이었어요. 다들 부모님께 지원받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저희는 최대한 우리끼리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식비를 아끼려 매일 도시락을 싸고, 외식은 일절 하지 않고, 여행 가고 싶으면 신용카드 마일리지를 열심히 모아서 공짜로 여행 다니고.. 열심히 살았던 우리였는데, 다행히 남편이 좋은 소식을 물고 왔네요.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배우자에게도 워킹 퍼밋을 주기도 하며, 영주권 신청도 금방 할 수 있기에, 저희와 같이 불안한 신분의 학생들에게는 이것보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은 없는 것 같아요. 

 

 

 

휴대전화 번호도 바꾸고, 집 주소도 바꾸고, 나라도 바꾸고, 이제는 더이상 두려움에 떨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하루하루가 기쁘네요.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 꿈꿔볼 새로운 미래에 더 이상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집착하지도 않게 되었어요.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던 교수님들 모두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하고 나갈 수 있게 되었네요. 이제는 미국 생활 이야기보다는 캐나다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네요! 행복한 기운만을 갖고 새로운 시작 해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