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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이야기(부제: 아내로 그리고 엄마로)

SNS랑 즐겨찾기 목록 지우기.

헤일리씨 2020. 2. 26. 12:03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남편이 없으면 꼼짝없이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그래도 딱히 불편한 건 없다. 다행히 남편이 출장 가기 전 코스트코에서 식량을 많이 사다 두어서, 나가지 않아도 먹을 것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하고, 운동하고, 코딩 하다가, 간단히 점심 먹고 다시 책 읽고 글 쓰고, 자기 전에 다시 운동하고.. 그냥 일상적인 하루의 반복이었다. 사실 남편이 없다 보니, 외로움이 보편적 일상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아들은 내 옆에서 오후 내내 거의 자고, 나는 정적 속에서 홀로 타자를 칠 뿐이었다. 공허한 집 안에 찬 기운만 맴돌았다. 그래서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비책으로 찬장에 숨겨둔 '불닭볶음면' 하나를 끓여먹었다. 몸에 좋지 않다고 웬만하면 먹지 않는 불닭볶음면이었지만, 혼자 외로움을 이렇게라도 채우고 싶기에 오늘은 나의 원칙을 좀 어겨보았다. 

 

 

 

 

매운 불닭볶음면 하나를 먹고 나니, 잠도 좀 쏟아지고, 잠을 깰겸 으레 그러하듯 폰으로 인스타그램과 내 아는 사이트 몇 개를 들락날락거렸다. 인스타그램에는 친구들의 아이들 사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 그리고 연예인들의 패션 정보 등등 수많은 정보들이 있었다. 한 눈에 다 보기에도 힘든 정보들이 내 휴대폰을 가득 채웠다. 그중에서 나는 미국 시민권을 신청한다는 친구의 피드를 보았고, 그저 부러워졌다. 나도 시민권, 아니 영주권만 있었어도, 맘 편하게 모든 걸 내려놓고 취직 준비를 하면 될 텐데.. 그리고 뉴욕에 사는 친구들의 피드를 보며, 걸어 다닐 수 있고, 대중교통 있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논문을 끝 맞춰가는 친구의 피드를 보며 또 부러웠다. 그들의 피드가 나의 부러움으로 치환되는 걸 느꼈다. 부러움이 다시 우울감으로 변하는 걸 느끼게 되면서, 나는 후다닥 인스타그램을 종료했다. 

 

 

 

그런 뒤, 나는 내가 자주 가는 사이트들에 들어갔다. 그 사이트들의 주된 유인요소는 익명게시판에 있었다.정부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런 정부에 대한 비판이 타 사이트에서 온 사람들이 선동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가득찬 익명게시판. 또 다른 사이트에서는 연예인들에 대한 험담이 주를 이뤘다. 어떤 여자 연예인은 예쁘지 않은데 예쁜 척을 한다, 자기가 졸업식도 아닌데 자기가 졸업한 것처럼 자랑한다라는 등 여러 험담들이 인터넷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사이트의 또 다른 익명 게시판에는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 같다, 시부모가 미국에 오려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글들에 수 십게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 댓글들 대부분은 남편에 대한 험담과 시부모에 대한 험담이었다. 

 

 

 

인스타그램에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고, 익명게시판에는 모두가 슬픈 사람이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나는 타인에게 부러움만 느끼는 사람이 되고, 익명게시판에 들어가면 나는 험담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된다. 이런 의미없는 것들에 보내는 나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험담과 부러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자연스레 신경 쓰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남들을 보며 험담할 구석을 자연스레 찾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결국 타인만 인생에 남는 그런 인생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SNS를 지웠다. 그리고 즐겨찾기로 해놓은 사이트들을 다 지워냈다. 

 

 

 

 

의미 없는 시간으로 채우는 하루가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하루로 채워보는 연습을 천천히 이렇게 한걸음 나아가봐야겠다. 

 

 

 

아무리 집이 좋다지만, 그래도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파리 메르시에 있는 이런 북카페 하나 집 앞에 있으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다음 아파트를 고를 때는 무조건 예쁜 카페, 책이 있는 카페 옆에 살 것이다.